수어통역사로 살아온 시간

수어통역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안에서 참 많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글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두 저 혼자만의 경험은 아닙니다.
함께 일하며 나눴던 여러 수어통역사 선생님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이 일을 이어가는 모든 수어통역사들의 순간들,
그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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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의 순간을 함께했을 때
농인 산모의 출산 과정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진통 중에 마음을 나누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큰 장면 속에서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던 시간,
지금도 가장 감격스럽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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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학생의 성장을 지켜볼 때
학교 수업 통역을 하다 보면
조용하던 학생이 점점 자신감을 갖고 참여하게 됩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시험을 잘 보고,
교수님께 칭찬을 듣는 그 순간을 함께할 때
내 일처럼 기쁘고 흐뭇합니다.
나도 옆에서 덩달아 배우고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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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나아지는 모습을 볼 때
병원 통역은 말 그대로 생명과 직결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농인이 증상을 정확히 전달하고
의사의 설명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치료 후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
이 일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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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서 억울함을 풀어줄 때
법정에서 통역할 때는 긴장감이 큽니다.
농인이 본인의 말을 정확히 전달하고,
상대방의 말을 또렷하게 이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억울했던 상황이 바로잡히고,
농인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왔던 순간은
잊기 어려운 기억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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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간의 대화가 다시 시작될 때
소통이 끊긴 가족 사이에서
처음으로 대화가 오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말보다 눈빛과 손짓이 먼저 흐르고,
쌓였던 오해가 하나씩 풀리는 장면을 볼 때면
그 자리에 함께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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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에서의 오해를 풀어줄 때
근무지에서 농인과 상사 사이에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오해가 깊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 통역을 통해 서로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해주면
긴장된 분위기가 풀리고,
조금씩 관계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작지만 큰 변화가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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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통역이 끝난 뒤
짧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담긴 진심은
때론 긴 하루의 피로를 잊게 만듭니다.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이 일이 가진 힘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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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대에서 통역할 때
해외 농인과 소통해야 하는 국제 행사나 회의에서
수어통역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국가와 언어를 넘어 손으로 이어지는 소통은
언제나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그 무대에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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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에도 많은 순간들
재난 상황에서 통역으로 긴급 안내를 도운 일,
농인의 삶에 작게나마 변화를 준 경험,
그 모든 순간들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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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수어통역사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로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이 마음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소중한 소통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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