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어통역사의 통역 방식과 범위
‘수어통역사’는 단순히 손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농인과 청인 사이에서 언어와 문화, 감정과 상황을 조율하는 의사소통 전문가입니다.
오늘은 수어통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통역을 수행하고,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한 릴레이 통역 사례도 함께 소개드리려 합니다.
1. 수어통역사의 통역 방식
① 동시통역
발화자가 말하는 동시에 수어로 통역하거나, 수어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대규모 강연, 방송, 공연 등에서 자주 사용되며 빠른 이해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② 순차통역
발화자가 말한 후 잠시 멈추면 그 내용을 수어로 옮기거나 반대로 수어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상담, 의료 진료, 법률 상담처럼 정확성이 중요한 상황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③ 릴레이 통역
직접적인 통역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간 통역자가 연결 고리가 되어 소통을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무학농인처럼 표준 한국수어를 배우지 못하고 홈사인을 사용하는 농인의 경우, 수어통역사와의 소통이 어렵습니다.
이럴 땐 그들의 시각 문화와 표현에 익숙한 청각장애인통역사가 중간에서 통역을 조율해주는 방식이 사용됩니다.
국제적인 행사에서도 릴레이 통역은 필수입니다.
저도 25살에 릴레이 통역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수어를 배운 지 5년쯤 되었고, 수어통역 경험이 많지 않았습니다.
중국 농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한국수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중국 농인을 조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그 농인은 한국수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저와 중국 농인 친구가 팀을 이루어 릴레이 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역 흐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수사관(음성) → 저(한국수어) → 중국 농인 친구(중국수어) → 조사 대상 농인
하지만 수사관은 마치 저를 심문하듯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고, 처음 겪는 무거운 현장이 매우 두려웠습니다.
‘다시는 이런 통역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큰 압박이었지만, 동시에 릴레이 통역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서적으로도 무게 있는 일인지를 깊이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수어통역사의 활동 범위
수어통역사는 다음과 같은 여러 영역에서 활약합니다.
- 공공기관 및 민원 현장
정부청사, 주민센터, 경찰서,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 의료 현장
병원 진료, 심리 상담, 진단 결과 설명 등 - 교육 분야
초중고, 대학, 직업 훈련, 평생교육 등 - 법률 및 제도 절차
법정 출석, 계약 설명, 행정 상담 - 문화 및 방송
공연, 전시, 텔레비전 방송, 영상 콘텐츠 등 - 기업과 직장 내
회의, 면접, 교육, 사내 커뮤니케이션 등 - 일상생활
은행, 전화 주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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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수어통역사는 단순한 통역가가 아닙니다.
동시통역, 순차통역, 릴레이 통역 등 다양한 방식으로, 농인이 어디서든 정보에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언어·문화·감정 조율자입니다.
특히 릴레이 통역은 국제적·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넘나드는 고난도 작업이며, 실무에서는 정서적 부담도 크다는 점에서 수어통역사의 역할은 더욱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