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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이 있는데 왜 수어통역이 필요할까요?
TV 프로그램, 공공 행사, 온라인 강의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자막이 제공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농인(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이 자막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자막이 있는데, 수어통역까지 꼭 필요한가요?”
“글씨는 읽을 줄 아시잖아요?”
이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고, 또 중요한 물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를 차근차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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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읽는 것과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 모두 어릴때부터 성인까지, 10년 넘게 영어를 배웁니다. 영어 문장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장이 담고 있는 뉘앙스, 문화적 맥락, 문법적 구조까지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영어 문장을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듯, 농인(청각장애인)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청인은 한국어를 듣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하지만 농인(청각장애인)은 듣는 과정 없이 글자를 통해 한국어를 학습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한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의 의미나 문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한국어가 제1언어가 아니라, 제2언어가 되는 거죠.
*모든 청각장애인이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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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는 농인의 ‘제1언어’입니다
한국수어는 단순한 몸짓이나 제스처가 아닙니다. 고유한 문법과 구조를 가진 독립된 언어이며,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집니다. 많은 농인들은 수어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생각을 확장해 나갑니다. 수어는 단순한 번역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경험을 담고 있는 언어입니다.
따라서 한국어 자막만 제공되면, 단어는 눈으로 읽을 수 있지만, 그 안의 의미까지 정확히 전달되기는 어렵습니다. 수어는 그 내용을 ‘농인의 언어’로 직접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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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은 ‘이해’를 위한 통역입니다
공공 방송이나 행사에서 수어통역이 병행되는 이유는 단순한 ‘형평성’이나 ‘배려’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는 정보 접근의 평등을 보장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농인이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제1언어인 수어로 통역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난 상황에서 자막이 느리거나 잘 보이지 않는다면, 자칫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어통역은 그 즉시 직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농인에게 훨씬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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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자막이 있다고 해서 모든 정보가 완벽히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글자는 눈으로 볼 수 있어도, 언어는 마음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수어통역은 농인이 정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자막도 있고, 글도 읽을 줄 아는데 굳이 수어까지?’라는 생각은, ‘영어 책을 (눈으로)읽을 수 있으니 영어로 된 수업도 무리 없겠지’라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같은 정보를, 같은 수준에서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수어통역의 존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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